발사 73초 후 챌린저호가 폭발했다. 7명 사망. 학교에서 생방송으로 보던 미국 어린이 수백만 명이 봤다 — 그날 발사에는 32살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가 타고 있었으니까. 17년 후, 컬럼비아호도 같은 NASA 관리 문화의 함정에 빠졌다. 두 사고 모두 엔지니어들은 미리 알고 있었다.
플로리다 케이프 카나베랄. 그날 아침 영하 -2°C. 역사상 가장 추운 셔틀 발사. 발사대가 얼음으로 덮여 있었어. 그러나 NASA는 — 발사를 강행했어. 이미 발사가 두 번이나 연기됐고, 다음에 또 미루면 일정이 더 꼬였거든.
그날 발사에는 — 크리스타 매콜리프(Christa McAuliffe, 37세)가 타고 있었어. 뉴햄프셔 고등학교 사회 교사. NASA의 "Teacher in Space" 프로그램 1호 — 11,000명 지원자 중 선발. 미국 모든 학교에서 — 학생들이 교실 TV로 발사를 보고 있었어. 자기들의 평범한 선생님 같은 사람이 우주에 가는 걸.
11시 38분. 발사. 처음 60초간은 모든 게 정상이었어. 73초 — 발사 시점부터 73초가 지났을 때, 전국 TV 화면이 — 오렌지색 화염과 흰색 연기로 갑자기 변했어. 챌린저는 그대로 사라졌어. 캡슐 잔해는 약 4km 상공에서 — 그래도 일부 승무원은 살아 있었어 (탈출 가능 산소 마스크가 작동한 흔적이 있었거든). 캡슐이 시속 333km로 대서양에 충돌. 모두 즉사.
사고 원인은 — O-링이라는 작은 고무 부품 두 개였어. 셔틀의 거대한 흰색 보조 부스터(SRB)는 — 한 통이 아니라 여러 조각으로 만들어 발사장에 가져온 후 조립해. 그 조립부 사이를 봉인하는 게 O-링.
O-링 재질은 — 평상시엔 탄성이 좋은 고무야. 그러나 5°C 이하에서 탄성을 거의 잃어. 발사 시 SRB 안 압력이 갑자기 200기압까지 치솟는데 — 차가운 O-링이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0.01초 동안 틈새가 벌어지면서 뜨거운 연료 가스가 새는 거.
발사 0.678초에 — 챌린저 우측 SRB의 O-링이 그렇게 무너졌어. 처음엔 그냥 검은 연기. 발사 58초에 — 작은 화염이 SRB 측면에서 새기 시작. 73초에 — 그 화염이 외부 연료 탱크의 액체수소 부에 닿았고, 그게 폭발.
1985년 7월부터 — 보이졸리는 자기 회사(SRB를 만드는 Morton Thiokol)와 NASA에 O-링이 영하에서 위험하다는 메모를 지속적으로 보냈어. 모두 무시당했지. 그리고 1986년 1월 27일 — 발사 전날 밤 — 그가 마지막 호소를 했어.
1월 27일 저녁, 케이프 카나베랄에 한파가 닥쳤어. 다음날 새벽 영하로 떨어질 예보. 보이졸리가 회사 회의에서 — "발사를 미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어. 결정적인 순간:
"O-링은 -1°C 이하에서 절대 안전하지 않습니다. 만약 발사하면 — 챌린저는 폭발할 겁니다."
— Roger Boisjoly, Morton Thiokol 회의, 1986.01.27 22:45 EST (사고 12시간 전)회의에 참석한 NASA 관리자가 — Morton Thiokol 임원에게 압박을 가했어. "엔지니어가 아닌 관리자의 모자를 써라(Take off your engineering hat and put on your management hat)"는 그 유명한 한 마디. 회사가 한밤중에 입장을 뒤집고 — "발사 OK"로 변경. 보이졸리는 다음 날 TV로 챌린저 폭발을 봤어.
사고 후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사고조사위원회. 위원 중 한 사람이 —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캘텍 교수, 양자전기역학의 창시자 중 한 명. 당시 67세, 암 투병 중.
1986년 2월 11일, 워싱턴 D.C., 의회 청문회. 전국 생중계. NASA 관리자들이 — O-링 문제는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발언하고 있었어. 그때 파인만이 — 자기 책상 위 얼음물 컵에서 — O-링 샘플 한 조각을 꺼냈어. 회의 시작 전에 그가 미리 준비한 거였지.
"제가 이걸 얼음물에 몇 분 담갔습니다. 보세요 — 제가 이걸 누르면,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즉, O-링이 영하 또는 그에 가까운 온도에서는 — 더 이상 탄성이 없습니다. 셔틀 디자인에서, 이게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명확합니다."
— Richard Feynman, 로저스 위원회 청문회, 1986.02.11 (전국 생중계)이 5분간의 시연이 — NASA의 모든 부인 발언을 단번에 무너뜨렸어. 다음 날 모든 신문 1면이 파인만과 얼음물 사진. 사고 책임이 — 작은 부품의 결함이 아니라 "엔지니어 경고를 무시한 NASA 관리 문화"에 있다는 게 명확해졌지.
17년이 지났어. 챌린저 사고로 셔틀 프로그램이 32개월 중단됐다 1988년에 재개. 그 후 100번 이상의 안전한 비행. NASA 사고 보고서를 다 읽고 시스템 개혁도 했지. 그러나 — 2003년 2월 1일 아침.
컬럼비아호 STS-107이 16일간 우주 임무를 마치고 텍사스 상공으로 재진입 중이었어. 시속 약 24,000km. 고도 60km. 그리고 — 우주선의 좌익이 갑자기 분해됐어. 컬럼비아 전체가 텍사스 동부 상공에서 산산조각. 7명 사망.
원인은 — 발사 시점에 외부 연료 탱크의 단열재(폴리우레탄 폼)가 떨어져 나와 좌익에 충돌한 것. 가로 약 50cm 크기의 폼 한 조각이 시속 800km로 — 좌익 앞쪽 탄소 강화재(RCC) 패널을 부쉈어. 그 구멍이 16일간 우주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 재진입 시 그 구멍으로 1,650°C 플라즈마가 들어가서 좌익 내부를 녹였어.
컬럼비아 사고조사위원회(CAIB) 보고서가 나왔을 때 — 가장 충격적인 결론은 "이전 챌린저 보고서와 거의 똑같다"는 것이었어:
여기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어. EP01의 폰 브라운(이때 NASA Marshall 소장)은 — 1970년대 초반에 셔틀 프로그램에 강하게 반대했어. 그의 주장: "재사용 가능 우주왕복선은 — 너무 복잡하다. 단순한 일회용 로켓이 더 안전하고 더 싸다."
그러나 —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셔틀을 승인. 폰 브라운은 그 결정을 보고 1972년에 NASA를 떠났어. 그가 말한 — "재사용 우주선은 작동할 수 있지만,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서 보이지 않는 위험이 항상 있다"가 — 그 후 14년 후(챌린저), 31년 후(컬럼비아)에 입증됐어.
셔틀은 — 결국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한 운송수단이었어. 부품 250만 개. 한 번 발사 비용 약 5억 달러(NASA 추정). 원래 설계 목표는 "트럭 같은 우주선" — 일주일에 한 번 발사. 실제론 — 1981-2011년 30년 동안 총 135회 발사. 평균 약 4번/년.
챌린저 7 + 컬럼비아 7 = 14명. 셔틀 30년 운용 동안 일어난 모든 사망 사고. NASA 통계상 셔틀의 사망률은 1.5%. 즉 — 셔틀에 100번 타면 1.5명이 죽는다는 거. 어떤 합리적 우주여행 산업도 이 수치로는 운영 못 함.
두 사고가 남긴 교훈은 — 기술 문제가 아니야. 관리 문화가 엔지니어를 무시하면 — 결국 사고는 일어난다는 거. 이게 셔틀 두 사고의 진짜 결론이야. 그리고 — 2003년 컬럼비아 후 NASA가 만든 안전 문화 개혁이 — 결국 SpaceX와 Blue Origin 같은 민간 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어.
다음 편(EP08)에서는 — 두 사고가 일어난 그 시기에, 인류의 가장 외로운 두 우주선이 태양계를 빠져나가고 있었어. 보이저 1호와 2호. 칼 세이건이 그 안에 넣어둔 황금 레코드, 1990년에 60억 km 밖에서 찍은 "Pale Blue Dot", 그리고 2026년에도 작동하고 있는 그 두 척의 작은 배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