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BO의 나라가, 미국의 로봇을 사들이고 부품까지 노린다. 두 재벌이 쥔 독특한 패를 들여다본다.
6편에서 일본은 완성품의 화려함을 내려놓고 부품을 쥔 조용한 강자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옆 나라인 한국은 어디에 서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한국은 일본처럼 부품의 야심을 키우면서도, 동시에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로봇 회사를 소유하고, 거대 재벌이 완성품 경쟁에까지 직접 뛰어든, 어느 한 칸에 깔끔하게 들어가지 않는 독특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 독특함은 세 갈래에서 나옵니다. 첫째는 1편에서 DARPA 대회를 제패한 HUBO의 기술 유산이고, 둘째는 그 유산을 이어 부품까지 직접 만드는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삼성이 베팅한 것이며, 셋째는 5편에서 보았듯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품은 현대입니다. 이번 편은 이 세 갈래가 어떻게 한국을 '부품과 완성품 사이'라는 독특한 자리에 세워 놓았는지, 그리고 그 자리의 빈칸은 무엇인지를 들여다봅니다.
한국의 휴머노이드 이야기는 1편에서 본 그 장면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2015년 미국 포모나에서 열린 DARPA 재난대응 로봇대회에서, KAIST 오준호 교수의 팀이 DRC-HUBO+로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우승한 사건입니다. 그 우승은 단지 한 번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한국이 직접 키운 휴머노이드 기술 인력과 노하우라는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그 뿌리에서 자라난 대표적인 기업이 레인보우로보틱스입니다. 오준호 교수의 연구실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협동로봇과 휴머노이드를 만드는데, 특히 주목할 점은 3편에서 '가장 비싼 한 줌'이라 불렀던 정밀 감속기, 곧 하모닉 드라이브를 자체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기업에 의존하던 핵심 부품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한국이 단순히 로봇을 조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의 비싼 부품까지 쥐려는 야심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한국이 특별한 진짜 이유는, 이 분야에 두 거대 재벌이 직접 뛰어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먼저 삼성전자는 앞서 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 최대주주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자 막대한 자본을 가진 삼성이 휴머노이드를 미래 사업으로 점찍고, 부품까지 만드는 기술 기업을 사실상 품에 안은 것입니다.
다른 한 축은 현대자동차그룹입니다. 5편에서 보았듯 현대는 2021년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해,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휴머노이드 Atlas와 그 최고 수준의 운동 제어 기술을 손에 넣었습니다.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는 제조 역량에 더해 완성형 휴머노이드 기업까지 가졌으니, 테슬라가 노리는 '자동차 회사의 휴머노이드'라는 길을, 현대 역시 다른 방식으로 걷고 있는 셈입니다.
이 그림을 한 발 떨어져 보면, 한국의 진짜 무기가 드러납니다. 바로 한 나라, 심지어 한 기업집단 안에서 로봇을 이루는 거의 모든 층위를 메울 수 있는 수직계열화의 잠재력입니다. 미국이 부품을 아시아에 기대고 일본이 부품에만 머무는 동안, 한국은 완성품부터 핵심 부품까지를 자국 기업의 손으로 채울 가능성을 동시에 쥐고 있습니다.
위 그림이 보여 주듯, 삼성 쪽에는 휴머노이드와 감속기를 만드는 레인보우로보틱스, 배터리의 삼성SDI, 메모리 반도체의 삼성전자가 늘어서 있고, 현대 쪽에는 완성품 로봇 Atlas를 가진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거대한 제조 역량의 현대차가 자리합니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 같은 배터리 강자와 에스비비테크·에스피지 같은 감속기 기업까지 더하면, 한국은 로봇의 몸을 이루는 거의 모든 부품과 완성품을 자국 기업으로 채울 수 있는 드문 나라가 됩니다.
그러나 위 그림에는 일부러 비워 둔 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맨 위층, 로봇의 두뇌를 이루는 인공지능입니다. 5편에서 보았듯 오늘의 로봇을 학습시키는 대형 인공지능 모델과 그 생태계의 중심은 여전히 미국이고, 한국은 반도체와 부품에서는 강하지만 그 위에서 돌아가는 인공지능의 최전선에서는 한 발 뒤에 있습니다.
또 하나의 빈칸은 시장의 크기입니다. 미국에는 막대한 벤처 자본이, 중국에는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있지만, 한국은 두 가지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결국 한국의 승부는 재벌의 자본과 수직계열화라는 강점을 얼마나 빠르게 실제 제품과 인공지능 경쟁력으로 바꿔 내느냐에 달려 있으며, 이 점에서 한국은 가능성과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은 부품과 완성품 사이의 독특한 자리에서, 두 재벌의 자본과 수직계열화라는 무기로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HUBO의 유산,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부품,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완성품, 그리고 배터리와 반도체까지. 그 어느 나라보다 넓은 그물을 가졌지만, 정작 가장 위층의 인공지능과 시장의 크기라는 빈칸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관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이 시리즈의 마지막 무대가 남았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2편에서 보았던 물량과 가격의 논리를, 완성품에서 부품까지 자국 공급망 전체에 적용하며 가장 빠르게 추격하는 나라. 미국의 자본과 인공지능, 일본의 부품, 한국의 수직계열화에 맞서 중국이 꺼내 든 무기가 무엇인지, 다음이자 마지막 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