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돈과 가장 앞선 인공지능이 모인 나라. 그 화려한 군단과, 발밑에 깔린 한 가지 약점.
지난 네 편이 휴머노이드라는 기계를 역사와 현재, 기술과 돈으로 풀어냈다면, 이제부터의 네 편은 같은 이야기를 국가의 눈으로 다시 봅니다. 그 첫 무대는 미국입니다. 옵티머스와 피규어, 그리고 이미 창고와 공장에 들어선 일꾼 로봇들까지, 오늘의 휴머노이드 붐을 이끄는 이름의 상당수가 미국 기업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미국이 선두에 선 데에는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자본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의 인공지능을 사실상 발명하다시피 한 기술 생태계입니다. 이 두 무기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화려한 군단의 발밑에는 어떤 약점이 깔려 있는지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진영의 선두에는 성격이 사뭇 다른 두 개의 깃발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하나는 2편에서 보았듯 자동차 대량 생산의 논리로 휴머노이드를 밀어붙이는 테슬라이고, 다른 하나는 로봇의 두뇌가 될 인공지능을 직접 쥐려는 신생 기업 피규어입니다.
테슬라의 강점은 규모와 자금, 그리고 자율주행에서 다져 온 인공지능의 경험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휴머노이드를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제품으로 못 박았고, 그 한마디만으로도 시장 전체의 기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반면 피규어는 BMW 공장에 기체를 투입하고 한때 오픈AI와 손잡았다가 자체 인공지능으로 방향을 트는 등, 몸집은 작아도 기술의 최전선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도전자입니다.
화려한 두 깃발 뒤에는, 무대가 아니라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일꾼들의 군단이 자리합니다. 오리건의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디지트라는 두 발 로봇을 아마존을 비롯한 물류 창고에 실제로 투입해 왔고, 이를 위해 전용 생산 공장까지 세웠습니다. 텍사스의 앱트로닉은 아폴로라는 기체로 메르세데스-벤츠의 공장과 NASA의 우주 임무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노르웨이에서 출발했으나 미국 무대를 핵심으로 삼는 1X가 가세합니다. 이 회사는 다른 기업들이 공장을 노릴 때 오히려 가정에서 쓰는 휴머노이드라는 한층 어려운 길을 택했고, 오픈AI의 투자를 받으며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한데, 머스크식의 거대한 비전보다 오늘 당장 누군가의 일을 덜어 주는 현실적인 쓸모에 먼저 베팅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미국 군단의 진짜 무기는 개별 로봇이 아니라, 그 모두를 떠받치는 두 개의 토대에 있습니다. 첫째는 자본입니다. 휴머노이드 기업으로 흘러든 벤처 투자는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엔비디아 같은 거대 기업이 직접 투자자나 고객으로 뛰어들면서, 미국 기업들은 당장 돈을 벌지 못해도 오래 버틸 실탄을 손에 쥐었습니다.
둘째는 인공지능입니다. 3편에서 보았듯 오늘의 로봇은 사람이 일일이 프로그래밍하는 대신 스스로 학습하는 쪽으로 옮겨 갔는데, 그 학습을 가능하게 한 대형 인공지능 모델과 그것을 돌리는 연산 칩의 중심에 미국이 서 있습니다. 위 그림처럼 어느 회사의 로봇이든 그 머릿속에는 결국 엔비디아의 연산과 오픈AI 시대가 연 인공지능 기술이 깔려 있으며, 바로 이 공통의 토대가 미국 진영의 가장 깊은 해자입니다.
그런데 이 화려한 그림에는 한 가지 그늘이 있습니다. 로봇의 '머리'는 미국이 쥐고 있을지 몰라도, 그 머리를 움직이는 '몸'의 부품은 상당 부분 바다 건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4편에서 보았듯 가장 비싼 한 줌인 정밀 감속기는 일본 기업이 주도하고, 모터와 배터리 역시 일본과 한국, 중국의 공급망에 깊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소프트웨어와 자본에서는 압도적이지만, 정작 로봇을 물리적으로 깎아 만드는 하드웨어 공급망에서는 아시아에 기대고 있는 셈입니다. 로봇이 정말로 수백만 대 규모로 생산되는 시대가 오면, 이 부품을 누가 얼마나 싸고 안정적으로 대느냐가 미국 군단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변수이며, 그래서 이 시리즈의 다음 무대가 일본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자본과 인공지능이라는 두 무기로 휴머노이드 경쟁의 선두에 섰습니다. 가장 많은 돈이 모이고 가장 앞선 두뇌가 만들어지는 나라라는 점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그러나 그 강점의 그늘에는, 로봇의 몸을 이루는 부품 상당수가 바다 건너에 있다는 약점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바다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다음 편의 무대는 일본입니다. 한때 ASIMO로 휴머노이드의 대명사였고 지금은 화려한 완성품 경쟁에서 한발 물러난 듯 보이지만, 정작 미국 로봇의 관절 속 가장 비싼 부품을 조용히 쥐고 있는 나라. 그 조용한 강자의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