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자체보다 그 부품이 먼저 돈이 된다. 완성품 아래에 깔린 '곡괭이와 삽'의 지도를 따라가 본다.
3편은 휴머노이드를 다섯 층위의 부품으로 해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부도를 가만히 뒤집어 보면, 그것은 그대로 하나의 산업 지도이자 돈의 흐름도가 됩니다. 어떤 부품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을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소수에 불과하다면, 로봇이 대량 생산되는 순간 바로 그 길목에 돈이 고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작하기에 앞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나 매도를 권하는 글이 아니라, 휴머노이드라는 산업이 어떤 회사들의 어깨 위에 서 있는지를 설명하는 지도입니다. 등장하는 기업의 이름은 각 길목을 대표하는 예시일 뿐이며, 투자에 관한 판단과 그 결과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로봇 그 자체를 만드는 회사, 곧 완성품 제조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비대칭이 있는데, 2편에서 만난 주요 기업들 가운데 주식 시장에서 직접 사들일 수 있는 곳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테슬라는 상장사이지만 휴머노이드는 그 거대한 사업의 일부일 뿐이고, 피규어와 유니트리, 앱트로닉과 1X는 비상장이며,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자회사로 편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오래된 비유 하나를 다시 꺼내 듭니다. 금광이 터졌을 때 정작 꾸준히 돈을 번 쪽은 금을 캔 사람이 아니라 곡괭이와 삽, 청바지를 판 상인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로봇 회사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점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승자가 누구든 반드시 사들여야 하는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가 더 안정적인 길목일 수 있다는 논리이며, 위 그림은 바로 그 '곡괭이와 삽'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 줍니다.
3편에서 '가장 비싼 한 줌'이라 불렀던 정밀 감속기는, 밸류체인에서도 가장 두꺼운 길목으로 꼽힙니다. 하모닉 드라이브 같은 정밀 감속기는 만들기가 까다로워 오랫동안 일본 기업이 시장을 사실상 주도해 왔는데, 그 대표가 바로 사명 자체를 부품 이름으로 굳힌 하모닉 드라이브 시스템즈와, 또 다른 방식의 정밀 감속기를 만드는 나브테스코입니다.
그러나 이 과점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그린 하모닉 같은 기업이 빠르게 추격하며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고, 한국에서도 에스비비테크와 에스피지 같은 회사가 국산화에 도전하고 있는데, 휴머노이드 한 대에 관절마다 감속기가 수십 개씩 들어가는 만큼, 로봇이 정말로 대량 생산되는 시대가 오면 이 작은 부품을 둘러싼 경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시장이 됩니다.
감속기 못지않게 중요한 길목이 로봇의 '두뇌'를 떠받치는 인공지능 칩입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로봇이 보고 판단하는 연산을 담당하는 칩과, 그것을 다루기 쉽게 묶은 개발 도구까지 함께 제공하며 사실상의 표준 자리를 노리고 있는데, 어느 회사의 로봇이 팔리든 그 머릿속에는 이런 연산 장치가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 역시 전형적인 곡괭이와 삽입니다.
그 밖에도 길목은 곳곳에 있습니다. 관절에 들어가는 정밀 모터를 만드는 니덱 같은 회사, 자세와 힘을 감지하는 각종 센서를 만드는 기업,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전력을 담는 배터리 회사가 그렇습니다. 3편에서 진짜 병목이라 불렀던 배터리만 보아도, CATL과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같은 거대 배터리 기업들이 이미 이 흐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밸류체인을 국가의 눈으로 다시 보면, 한국과 중국의 위치가 특히 흥미롭습니다. 한국은 삼성이 지분을 가진 레인보우로보틱스를 비롯해 감속기와 모터, 배터리에 걸쳐 부품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포진해 있고, 현대자동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품은 만큼 완성품과 부품을 함께 노릴 잠재력이 있습니다.
중국은 한층 공격적입니다. 2편에서 보았던 물량전의 논리가 부품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감속기부터 모터와 배터리까지 자국 공급망 안에서 빠르게 국산화하며 가격을 낮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휴머노이드 밸류체인은 단순한 기업들의 경쟁을 넘어, 누가 부품 공급망을 더 깊고 싸게 쥐느냐를 둘러싼 국가 단위의 경쟁으로 번지고 있으며, 이 대목이 다음 편부터 시작될 미국·일본·한국·중국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역사에서 현재로, 기술에서 돈으로 이어진 네 편을 지나며, 우리는 휴머노이드라는 기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에서 가치가 흐르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흐름을 멀찍이서 바라보면, 그것은 결국 몇몇 나라가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두고 벌이는 거대한 경쟁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기술도 자본도 결국 국경 위에서 부딪칩니다. 다음 편부터는 시야를 한 단계 넓혀, 이 경쟁을 국가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가장 먼저, 옵티머스와 피규어, 그리고 막대한 자본과 인공지능으로 판을 흔드는 미국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