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1월, 코롤료프가 굴라크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1967년 1월, 그리섬·화이트·채피가 발사대 위에서 17초 만에 산 채로 불에 탔다. 1967년 4월, 코마로프는 결함 200개 캡슐로 떨어져 죽었다. 미국과 소련이 같은 16개월 안에 동시에 무너진 — 우주 시대의 가장 다크한 시기.
EP03 끝에서 이런 얘기 했지. "케네디의 도박이 NASA의 향후 10년을 결정했다"고. 그러면 그 10년은 어떻게 시작했냐 — 완전히 망한 채로 시작했어.
1966년 1월 14일부터 1967년 4월 24일까지, 정확히 16개월 동안 —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우주 프로그램이 동시에 무너졌어. 세 번의 큰 비극이 차례로:
이 16개월이 — 아폴로 11호의 그 한 발자국이 가능해진 진짜 이유야. 두 프로그램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비극으로부터 배우지 못해서 더 많은 사고로 이어졌을 거든. 그러나 그 대가는 — 정말 컸다.
코롤료프(EP02 그 사람)는 1966년 1월에 59살이었어. 직장에서 작은 폴립이 발견됐고, 의사들은 "30분이면 끝나는 일상적인 수술"이라고 했지. 1월 14일, 모스크바 크레믈린 병원에서 수술이 시작됐어.
그러나 마취가 시작되자마자 — 문제가 터졌어. 코롤료프가 입을 끝까지 못 벌리는 거야. 1938년 콜리마 강제수용소에서 NKVD 간수가 그를 구타할 때 부러진 턱이 — 28년 동안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거지. 기관 삽관(intubation)이 안 됐어.
코롤료프의 시신을 검시한 의사들은 — 이 환자가 어떻게 그동안 살아있었는지 의아해했다고. 굴라크 시절 영양실조로 인해 심장벽이 얇아져 있었고, 모든 장기가 만성 손상 상태였어. 스푸트니크, 가가린, 보스토크, 보스호드 — 그 모든 걸 만들 동안 그는 사실 죽어가는 몸으로 일하고 있었던 거야.
코롤료프 사망 이틀 후, 1966년 1월 16일. 소련의 모든 신문 1면이 — 처음으로 그의 이름과 사진을 실었어. 프라우다 헤드라인:
"학술원 회원이자 이중 사회주의노동영웅, 레닌상 2회 수상자, 위대한 소비에트 학자이자 디자이너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코롤료프 동지가 사망했다."
— 프라우다 1면, 1966.01.169년 동안 그가 누구인지 미국 CIA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정체가 — 그의 사망 통보문에서 밝혀진 거야. 그날 저녁 미국 신문들이 모두 같은 결론을 내렸어. "이 사람이 '수석 설계사'였다. 우리가 추적하던 그 사람."
장례식에는 흐루쇼프(이미 1964년에 실각했지만)가 나타났고, 새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코시긴 총리가 관을 들었어. 그러나 — 장례식이 끝나자 소련 우주 프로그램은 사실상 머리를 잃은 거였어.
코롤료프의 후계자로 임명된 바실리 미신(Vasili Mishin)은 — 훌륭한 엔지니어였지만, 코롤료프 같은 정치적 카리스마와 통합 능력은 없었어. 미신 시대에 시작된 N-1 달 로켓은 EP06에서 자세히 다룰 거야 — 4번 발사, 4번 다 폭발하는 비극의 시작.
코롤료프 사망 후 1년 13일.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 케네디 발사대 LC-34. 거대한 새턴 IB 로켓 위에 — 아폴로 1호 사령선(Block I)이 얹혀 있었어. 발사는 한 달 후, 2월 21일 예정.
그날 오후의 시험은 "Plugs-Out Test"라는 거였어. 외부 전원·통신 케이블을 모두 분리한 상태로, 캐빈만으로 모든 발사 시퀀스를 시뮬레이션하는 거. 발사 직전 4시간을 그대로 재현. 위험하지 않다고 분류된 시험이었어 — 연료도 안 들어가 있고, 로켓이 실제로 점화되는 것도 아니니까.
거스 그리섬(40세) — 사령관. 머큐리 4호(1961, 미국 두 번째 우주인), 제미니 3호(1965). 미국에서 가장 경험 많은 우주인 중 하나.
에드 화이트(36세) — 선임 조종사. 1965년 6월 제미니 4호에서 미국 최초의 우주 유영(EVA)을 한 사람.
로저 채피(31세) — 부조종사. 우주 비행 경험 없음. 이게 첫 임무.
오후 1시, 세 사람이 캐빈에 들어갔어. 그리고 — 처음부터 모든 게 잘못되고 있었어:
오후 6시 30분 31초. 캐빈 좌석 아래에서 스파크 한 번. 닳은 전선이 알루미늄 표면과 접촉. 그러나 — 이게 그냥 스파크가 아니었어. 100% 산소 + 16.7 psi 환경에서는 보통 환경에서 절대 안 타는 것들도 폭발적으로 타.
나일론 그물망(짐 보관용), 벨크로, 우주복 호스. 모든 게 동시에 불이 붙었어. 처음 6초 동안 온도가 1,000°C까지 치솟았다. 캐빈 압력이 1초에 약 2 psi씩 올라가고 있었어.
[18:30:54] 그리섬 (확실히 식별 불가능)
"불이다!"
[18:30:58] 화이트 (격앙)
"우리한테 캐빈에 불 났다!"
[18:31:04~12] 채피 (마지막)
"우리 다 타고 있어! 여기서 꺼내 줘!"
[18:31:13]
— 통신 두절. 캐빈 외벽이 압력으로 파열.
외부에서 발사대 직원들이 — 캐빈의 작은 창에서 화이트가 해치를 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봤어. 손잡이를 당기는 게 보였어. 그러나 해치는 — 안에서 열기 위해 90초가 필요했고, 그것도 캐빈 안 압력이 외부보다 낮을 때만 열리는 구조였어. 화재로 압력이 올라가니까 — 해치를 안에서 절대 못 여는 상황이 된 거지.
발사대 직원들이 외부에서 해치를 열기 위해 5분 30초가 걸렸어 —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무엇일지 알면서. 들어가서 본 광경은 — 보고서에서도 자세히 묘사하지 않을 만큼 끔찍했어. 세 사람의 우주복이 캐빈 내부 구조물과 녹아 붙어서, 시신을 분리하는 데만 7시간이 걸렸다.
가장 잔혹한 진실은 — 그리섬이 알고 있었다는 거야. 사고 한 달 전, 그가 휴스턴 시뮬레이터 위에 — 농담처럼 보이는 행동을 했어. 레몬 한 개를 끈으로 매단 거. 미국에서 "lemon"은 "불량품, 망가진 차"를 가리키는 슬랭이거든.
그가 그날 한 말이 — 후에 NASA 청문회 증언에서 다시 나와:
"이 캐빈에는 결함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일정은 누구도 늦추지 않는다."
— Gus Grissom, 1966년 12월 (시뮬레이터 위 레몬 매단 직후)NASA 사고조사위원회는 1,407페이지 보고서를 만들었어. 발견한 결정적 결함들:
아폴로 1호 화재 3개월 후. 1967년 4월 24일, 모스크바 시각으로 새벽 6시 24분. 카자흐 사막 한가운데, 시속 약 140km로 — 소유즈 1호 캡슐이 땅에 충돌했어. 그 안에는 40살의 블라디미르 코마로프가 있었어.
가가린의 가장 친한 친구. 보스호드 1호로 1964년 우주 비행 경험. 소유즈 1호의 사령관으로 — 그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란 걸 거의 모두가 알았다. 자기 자신, 가가린, 엔지니어들 — 그리고 정치국까지.
발사: 1967년 4월 23일 03:35 모스크바 시각. 궤도 진입 직후부터 모든 게 망가지기 시작했어:
코마로프의 죽음에는 음모론이 많아. 가장 유명한 건 — 그가 죽기 전 모스크바와 통신하면서 소련 지도부에 욕설을 퍼부었고, NSA 이스탄불 도청기지가 이걸 녹음했다는 이야기. 일부 책(특히 2011년 Doran/Bizony 의 Starman 후속작)에 등장하지만 — NASA 역사가 Asif Siddiqi 등은 이 부분을 강하게 회의적으로 본다. NSA 도청 자료 자체는 존재하지만, 그 내용이 "분노의 외침"이었는지 "차분한 임무 수행"이었는지에 대해 1차 자료가 다르거든.
확실한 건 — 장례식에서 코마로프의 관은 닫혀 있었어야 했지만 열려 있었다는 것. 브레즈네프가 직접 명령했어. "사회주의 영웅의 시신을 인민이 봐야 한다"고. 그 안에 들어 있던 게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 사진이 남아 있어. 보고 싶지 않다면 검색하지 마.
16개월. 미국과 소련 양쪽에서, 우주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차례로 죽었어:
이 셋의 공통점이 보여? 모든 죽음이 — 알면서 막지 못한 죽음이라는 거야. 굴라크의 잔혹함이 만든 부상, 산소 환경의 위험, 결함 200개의 캡슐. 모두 미리 알려져 있었어. 누군가는 이미 경고를 했어. 그러나 — 정치 일정, 자존심, 관료주의가 그 경고를 묻었다.
그러나 한 가지 — 이 세 비극이 이후의 모든 우주 비행을 바꿨어. 아폴로 1호의 1,407페이지 보고서가 만든 Block II 캐빈이 결국 인류를 달에 보냈어. 소련도 소유즈 1호 후 18개월 동안 모든 캡슐을 재설계했고, 결국 1971년 살류트 우주정거장으로 이어진 안정적인 소유즈 시리즈가 — 그 비극에서 나왔다. 2026년 지금도 ISS로 가는 그 캡슐.
다음 편(EP05)에서는 — 1969년 7월 20일, 12초의 연료를 남기고 인류가 다른 천체에 발을 디딘 그날의 이야기. 그러나 이 EP04 비극이 없었다면 그 한 발자국은 없었을 거다. 그리섬이 살아 있었다면 — 아마 그가 첫 사람이 됐을 거란 게 NASA 내부에서 자주 했던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