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진화사 · EP 04

1년 4개월 동안
두 강대국이 동시에 무너졌다

1966년 1월, 코롤료프가 굴라크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1967년 1월, 그리섬·화이트·채피가 발사대 위에서 17초 만에 산 채로 불에 탔다. 1967년 4월, 코마로프는 결함 200개 캡슐로 떨어져 죽었다. 미국과 소련이 같은 16개월 안에 동시에 무너진 — 우주 시대의 가장 다크한 시기.

10분 read 2026.05.05 1966 → 1967

011년 4개월, 세 명의 거인

EP03 끝에서 이런 얘기 했지. "케네디의 도박이 NASA의 향후 10년을 결정했다"고. 그러면 그 10년은 어떻게 시작했냐 — 완전히 망한 채로 시작했어.

1966년 1월 14일부터 1967년 4월 24일까지, 정확히 16개월 동안 —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우주 프로그램이 동시에 무너졌어. 세 번의 큰 비극이 차례로:

1966.01.14 · 모스크바
코롤료프의 죽음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정신적·기술적 지주가 일상적인 수술 중에 죽었다. 28년 전 굴라크에서 부러진 턱이 마취 삽관을 막았다.
1967.01.27 · 케이프 케네디 LC-34
아폴로 1호 화재
발사 1개월 전 시뮬레이션 시험 중 캐빈 안에서 화재. 그리섬·화이트·채피 3명이 17초 만에 산 채로 불에 탔다. 해치는 안쪽으로 열리는 구조였다.
1967.04.24 · 카자흐 사막
소유즈 1호 추락 — 코마로프
엔지니어들이 결함 200개를 보고했고, 가가린이 10페이지 메모로 막으려 했지만 — 정치적 이유로 강행. 재진입 후 낙하산 실패. 시속 140km로 충돌.

이 16개월이 — 아폴로 11호의 그 한 발자국이 가능해진 진짜 이유야. 두 프로그램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비극으로부터 배우지 못해서 더 많은 사고로 이어졌을 거든. 그러나 그 대가는 — 정말 컸다.

021966.01.14 — 굴라크의 턱이 그를 죽였다

코롤료프(EP02 그 사람)는 1966년 1월에 59살이었어. 직장에서 작은 폴립이 발견됐고, 의사들은 "30분이면 끝나는 일상적인 수술"이라고 했지. 1월 14일, 모스크바 크레믈린 병원에서 수술이 시작됐어.

그러나 마취가 시작되자마자 — 문제가 터졌어. 코롤료프가 입을 끝까지 못 벌리는 거야. 1938년 콜리마 강제수용소에서 NKVD 간수가 그를 구타할 때 부러진 턱이 — 28년 동안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거지. 기관 삽관(intubation)이 안 됐어.

⚠️ 굴라크가 28년 후에 그를 죽인 메커니즘

코롤료프의 시신을 검시한 의사들은 — 이 환자가 어떻게 그동안 살아있었는지 의아해했다고. 굴라크 시절 영양실조로 인해 심장벽이 얇아져 있었고, 모든 장기가 만성 손상 상태였어. 스푸트니크, 가가린, 보스토크, 보스호드 — 그 모든 걸 만들 동안 그는 사실 죽어가는 몸으로 일하고 있었던 거야.

03이름이 처음 공개된 날 (1966.01.16)

코롤료프 사망 이틀 후, 1966년 1월 16일. 소련의 모든 신문 1면이 — 처음으로 그의 이름과 사진을 실었어. 프라우다 헤드라인:

"학술원 회원이자 이중 사회주의노동영웅, 레닌상 2회 수상자, 위대한 소비에트 학자이자 디자이너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코롤료프 동지가 사망했다."

— 프라우다 1면, 1966.01.16

9년 동안 그가 누구인지 미국 CIA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정체가 — 그의 사망 통보문에서 밝혀진 거야. 그날 저녁 미국 신문들이 모두 같은 결론을 내렸어. "이 사람이 '수석 설계사'였다. 우리가 추적하던 그 사람."

코롤료프 국장, 모스크바, 1966년 1월
1966년 1월 16-18일, 모스크바. 코롤료프의 시신이 노조회관에서 공개되고 —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소련 인민에게 보여졌어. 시신 위에 놓인 두 개의 황금별이 그가 받은 이중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의미해. 살아있을 때는 그 칭호조차 익명으로 받았다. 화장된 유해는 크렘린 벽 안에 안장됐어. 출처: RIA Novosti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장례식에는 흐루쇼프(이미 1964년에 실각했지만)가 나타났고, 새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코시긴 총리가 관을 들었어. 그러나 — 장례식이 끝나자 소련 우주 프로그램은 사실상 머리를 잃은 거였어.

코롤료프의 후계자로 임명된 바실리 미신(Vasili Mishin)은 — 훌륭한 엔지니어였지만, 코롤료프 같은 정치적 카리스마와 통합 능력은 없었어. 미신 시대에 시작된 N-1 달 로켓EP06에서 자세히 다룰 거야 — 4번 발사, 4번 다 폭발하는 비극의 시작.

041967.01.27, 케이프 케네디 LC-34 — "Plugs-Out" 시험

코롤료프 사망 후 1년 13일.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 케네디 발사대 LC-34. 거대한 새턴 IB 로켓 위에 — 아폴로 1호 사령선(Block I)이 얹혀 있었어. 발사는 한 달 후, 2월 21일 예정.

그날 오후의 시험은 "Plugs-Out Test"라는 거였어. 외부 전원·통신 케이블을 모두 분리한 상태로, 캐빈만으로 모든 발사 시퀀스를 시뮬레이션하는 거. 발사 직전 4시간을 그대로 재현. 위험하지 않다고 분류된 시험이었어 — 연료도 안 들어가 있고, 로켓이 실제로 점화되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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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호 승무원 (Block I 캐빈)
Virgil "Gus" Grissom · Edward H. White II · Roger B. Chaffee

거스 그리섬(40세) — 사령관. 머큐리 4호(1961, 미국 두 번째 우주인), 제미니 3호(1965). 미국에서 가장 경험 많은 우주인 중 하나.
에드 화이트(36세) — 선임 조종사. 1965년 6월 제미니 4호에서 미국 최초의 우주 유영(EVA)을 한 사람.
로저 채피(31세) — 부조종사. 우주 비행 경험 없음. 이게 첫 임무.

아폴로 1호 승무원 그리섬, 화이트, 채피
공식 임무 사진 — 그리섬, 화이트, 채피. 사진 촬영 며칠 전, 그리섬이 시뮬레이터 위에 레몬 한 개를 매달아 놨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캐빈은 레몬(불량품)이다"는 의미. 그가 죽기 한 달 전 일. 출처: NASA · 퍼블릭 도메인

오후 1시, 세 사람이 캐빈에 들어갔어. 그리고 — 처음부터 모든 게 잘못되고 있었어:

0517초 — 그리섬, 화이트, 채피의 마지막 송신

오후 6시 30분 31초. 캐빈 좌석 아래에서 스파크 한 번. 닳은 전선이 알루미늄 표면과 접촉. 그러나 — 이게 그냥 스파크가 아니었어. 100% 산소 + 16.7 psi 환경에서는 보통 환경에서 절대 안 타는 것들도 폭발적으로 타.

나일론 그물망(짐 보관용), 벨크로, 우주복 호스. 모든 게 동시에 불이 붙었어. 처음 6초 동안 온도가 1,000°C까지 치솟았다. 캐빈 압력이 1초에 약 2 psi씩 올라가고 있었어.

⚠️ 17초 — 통신 기록 (NASA 공식 보고서)

[18:30:54] 그리섬 (확실히 식별 불가능)

"불이다!"

[18:30:58] 화이트 (격앙)

"우리한테 캐빈에 불 났다!"

[18:31:04~12] 채피 (마지막)

"우리 다 타고 있어! 여기서 꺼내 줘!"

[18:31:13]

— 통신 두절. 캐빈 외벽이 압력으로 파열.

외부에서 발사대 직원들이 — 캐빈의 작은 창에서 화이트가 해치를 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봤어. 손잡이를 당기는 게 보였어. 그러나 해치는 — 안에서 열기 위해 90초가 필요했고, 그것도 캐빈 안 압력이 외부보다 낮을 때만 열리는 구조였어. 화재로 압력이 올라가니까 — 해치를 안에서 절대 못 여는 상황이 된 거지.

발사대 직원들이 외부에서 해치를 열기 위해 5분 30초가 걸렸어 —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무엇일지 알면서. 들어가서 본 광경은 — 보고서에서도 자세히 묘사하지 않을 만큼 끔찍했어. 세 사람의 우주복이 캐빈 내부 구조물과 녹아 붙어서, 시신을 분리하는 데만 7시간이 걸렸다.

아폴로 1호 캐빈 내부, 화재 후
아폴로 1호 캐빈 내부, 화재 후. 정면에 보이는 게 세 우주비행사가 앉아 있던 좌석들. 캐빈 외벽이 압력으로 파열되면서 — 외부에서 화염이 분출됐어. NASA가 이 사진을 처음 공개한 건 1968년이 되어서였다. 출처: NASA · 퍼블릭 도메인

06그리섬이 시뮬레이터에 매단 레몬

가장 잔혹한 진실은 — 그리섬이 알고 있었다는 거야. 사고 한 달 전, 그가 휴스턴 시뮬레이터 위에 — 농담처럼 보이는 행동을 했어. 레몬 한 개를 끈으로 매단 거. 미국에서 "lemon"은 "불량품, 망가진 차"를 가리키는 슬랭이거든.

그가 그날 한 말이 — 후에 NASA 청문회 증언에서 다시 나와:

"이 캐빈에는 결함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일정은 누구도 늦추지 않는다."

— Gus Grissom, 1966년 12월 (시뮬레이터 위 레몬 매단 직후)

NASA 사고조사위원회는 1,407페이지 보고서를 만들었어. 발견한 결정적 결함들:

📌 비극이 가져온 변화 — 아폴로의 재설계
화재 후 아폴로 프로그램은 21개월간 중단됐어. 그동안 캐빈 전체가 재설계됐다 — Block I → Block II:

이 재설계가 없었다면 — 아폴로 11호도 비슷한 사고로 끝났을 거란 게 NASA 내부 합의야. 즉 그리섬·화이트·채피의 죽음이 — 후속 우주인들의 생명을 구한 거다.

071967.04.23-24 — 코마로프, 그리고 가가린의 10페이지 메모

아폴로 1호 화재 3개월 후. 1967년 4월 24일, 모스크바 시각으로 새벽 6시 24분. 카자흐 사막 한가운데, 시속 약 140km로 — 소유즈 1호 캡슐이 땅에 충돌했어. 그 안에는 40살의 블라디미르 코마로프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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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코마로프 (Владимир Комаров)
1927.03.16 ~ 1967.04.24 · 소비에트 공군 대령 · 보스호드 1호(1964) · 소유즈 1호(1967) — 우주 비행 사고로 죽은 첫 인간

가가린의 가장 친한 친구. 보스호드 1호로 1964년 우주 비행 경험. 소유즈 1호의 사령관으로 — 그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란 걸 거의 모두가 알았다. 자기 자신, 가가린, 엔지니어들 — 그리고 정치국까지.

⚠️ 200개 결함, 그리고 가가린의 10페이지 메모
소유즈 1호의 발사 전 점검에서 — 엔지니어들이 약 203개의 설계·제작 결함을 보고했어. 정상 절차라면 발사가 6개월 이상 연기됐어야 했지. 그러나 — 1967년 5월 1일 노동절 + 10월 혁명 50주년이 코앞이었어. 브레즈네프는 정치적 쇼가 필요했어. 발사 강행 명령.

가가린(EP03 그 사람)이 정치국에 10페이지 메모를 보냈어. "이 캐빈은 비행할 준비가 안 됐다. 이대로 코마로프를 보내면 그를 죽이는 것이다." 메모를 직접 KGB 의장 안드로포프에게 전달한 사람이 — 메모를 들고 있다가 정치적으로 위험하니까 처분해버렸다는 게 후에 밝혀졌어. 메모는 정치국에 도달도 안 한 거지.

코마로프는 발사 전 친구들에게 — "내가 거부하면 가가린이 백업으로 갈 거야. 가가린은 살아야 해. 내가 간다."고 했다고. 이 일화는 그의 동료 우주인 알렉세이 레오노프(EP03 끝부분에 나온 그 사람)이 후에 증언했어.
블라디미르 코마로프, 우주복 차림
블라디미르 코마로프, 1967년 발사 직전. 그가 발사대로 갈 때, 가가린이 — 예고 없이 자기 우주복을 입고 발사대로 따라왔어.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가 코마로프 대신 가겠다고. KGB가 가가린을 끌어내고 코마로프를 캡슐에 태웠다. 출처: RIA Novosti /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발사: 1967년 4월 23일 03:35 모스크바 시각. 궤도 진입 직후부터 모든 게 망가지기 시작했어:

코마로프의 죽음에는 음모론이 많아. 가장 유명한 건 — 그가 죽기 전 모스크바와 통신하면서 소련 지도부에 욕설을 퍼부었고, NSA 이스탄불 도청기지가 이걸 녹음했다는 이야기. 일부 책(특히 2011년 Doran/Bizony 의 Starman 후속작)에 등장하지만 — NASA 역사가 Asif Siddiqi 등은 이 부분을 강하게 회의적으로 본다. NSA 도청 자료 자체는 존재하지만, 그 내용이 "분노의 외침"이었는지 "차분한 임무 수행"이었는지에 대해 1차 자료가 다르거든.

확실한 건 — 장례식에서 코마로프의 관은 닫혀 있었어야 했지만 열려 있었다는 것. 브레즈네프가 직접 명령했어. "사회주의 영웅의 시신을 인민이 봐야 한다"고. 그 안에 들어 있던 게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 사진이 남아 있어. 보고 싶지 않다면 검색하지 마.

08같은 1년 안에 일어난 일이 의미하는 것

16개월. 미국과 소련 양쪽에서, 우주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차례로 죽었어:

이 셋의 공통점이 보여? 모든 죽음이 — 알면서 막지 못한 죽음이라는 거야. 굴라크의 잔혹함이 만든 부상, 산소 환경의 위험, 결함 200개의 캡슐. 모두 미리 알려져 있었어. 누군가는 이미 경고를 했어. 그러나 — 정치 일정, 자존심, 관료주의가 그 경고를 묻었다.

그러나 한 가지 — 이 세 비극이 이후의 모든 우주 비행을 바꿨어. 아폴로 1호의 1,407페이지 보고서가 만든 Block II 캐빈이 결국 인류를 달에 보냈어. 소련도 소유즈 1호 후 18개월 동안 모든 캡슐을 재설계했고, 결국 1971년 살류트 우주정거장으로 이어진 안정적인 소유즈 시리즈가 — 그 비극에서 나왔다. 2026년 지금도 ISS로 가는 그 캡슐.

다음 편(EP05)에서는 — 1969년 7월 20일, 12초의 연료를 남기고 인류가 다른 천체에 발을 디딘 그날의 이야기. 그러나 이 EP04 비극이 없었다면 그 한 발자국은 없었을 거다. 그리섬이 살아 있었다면 — 아마 그가 첫 사람이 됐을 거란 게 NASA 내부에서 자주 했던 얘기야.

우주 진화사 · 시리즈 네비게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