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 4일, 모스크바 시각 22시 28분. 카자흐 사막 한가운데에서 R-7 로켓이 솟아올랐다. 96분 후, 작은 알루미늄 공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삐, 삐, 삐" 신호를 송신했다. 그 공을 만든 사람은 — 굴라크에서 6년 살아남은, 정체가 KGB 1급 비밀이었던 한 남자다.
1957년 10월 4일 금요일. 모스크바 시각으로 밤 10시 28분. 카자흐 SSR 튀라탐(지금의 바이코누르) 시험장에서 R-7 로켓이 발사됐어. 96분 후, 로켓 노즈콘이 분리되면서 — 안에 들어있던 83.6kg짜리 알루미늄 공 하나가 풀려나왔다. 지름 58cm. 바깥에 4개의 안테나. 이름은 Простейший Спутник-1 (Prosteishy Sputnik = "단순한 위성 1호"). 줄여서 스푸트니크 1호.
그게 지구 궤도에 진입하면서 송신을 시작했어. 두 개의 주파수 (20.005 MHz, 40.002 MHz)로 — "삐... 삐... 삐...". 한 시간 안에 일본의 햄 라디오, 캘리포니아의 햄 라디오, 뉴욕의 햄 라디오까지 모두 같은 신호를 잡았다. 비밀 코드도 아니었어. 일부러 누구나 들으라고 보낸 신호.
다음 날 아침. 미국 모든 신문 1면이 — 같은 헤드라인으로 도배됐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 주말 로드아일랜드에서 골프 휴가 중이었어. 보좌관들이 깨웠지. 그가 처음에 한 말 — "별로 위협이 안 된다." 그러나 며칠 안에 그도 깨달았어. 이건 위성의 문제가 아니야. "그들"이 "우리" 머리 위에 뭔가를 띄울 수 있고 — 우리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야.
스푸트니크는 군사적 가치는 거의 없었어. 신호도 "삐 삐"가 전부였고. 그러나 심리전으로는 —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한 발이었다. 무게 83.6kg, 비용은 추정 천만 달러 안팎. 그걸로 미국의 자존심을 산산조각 냈으니까.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다음 날, 소련 신문 프라우다는 위성에 대해 떠들썩하게 썼어. 그러나 한 가지가 빠져 있었지 — 이걸 만든 사람의 이름. 표기는 그냥 "Главный Конструктор" (Glavnyi Konstruktor, 수석 설계사)였어.
이게 단순한 익명 처리가 아니었어. 그의 이름은 KGB 1급 국가기밀이었다. 그가 1966년에 죽을 때까지 9년 동안. CIA는 "수석 설계사"가 누구인지 추적하느라 십 년을 썼지만 결국 못 알아냈어.
소련의 폰 브라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 그건 정확하지 않아. 폰 브라운은 영웅 대접 받으며 살았고, 코롤료프는 이름도 못 밝힌 채 살다 죽었어. 두 사람은 같은 1906~1912년대에 태어나서 같은 시기에 로켓을 꿈꾸기 시작했지만 — 한 사람은 SS 슈투름반퓌러가 됐고, 다른 한 사람은 굴라크에 끌려갔다.
1938년 6월 27일, 모스크바. NKVD(KGB의 전신)가 코롤료프를 체포했어. 32살의 그는 당시 RNII(반응공학연구소)의 핵심 엔지니어였어. 죄목은 "새 기술의 파괴 공작" — 누군가의 거짓 밀고였지.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였으니까.
판결: 10년 형, 콜리마 강제수용소 송치. 콜리마는 시베리아 동쪽 끝, 영하 50도가 일상인 금광 강제노동 수용소야. 거기 끌려간 사람의 절반 이상이 첫해에 죽었어.
그가 1944년 석방됐을 때, 동료 한 명이 한 말 — "우리는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걸 봤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이는 거의 다 빠지고, 머리가 하얗게 셌고. 38살의 모습이 60대처럼 보였다고.
여기서 EP01에 나온 페이퍼클립 작전 기억나? 미국이 폰 브라운 + 1,600명을 데려갈 때, 소련은 Operation Osoaviakhim으로 약 2,200명의 독일 과학자를 끌고 갔다고. 그런데 — 그 독일 과학자들이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핵심이 안 됐어. 코롤료프가 자기 팀으로 충분했거든. 독일인들은 변두리 자문 역할만 하다가 1950년대 동독으로 돌려보내졌어.
코롤료프 팀이 만든 것 — R-7 로켓. 1957년 8월 21일 첫 시험 성공. 인류 최초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미국 본토에 수소폭탄을 떨굴 목적으로 설계된 무기야:
여기 재미있는 비화 하나. 스푸트니크 1호는 원래 계획이 아니었어.
코롤료프 팀이 원래 만들던 위성은 "Object D"라고 — 1.4톤짜리 본격 과학실험 위성이었어. 우주선·자기장·태양 복사 측정 장비가 잔뜩 들어간 진짜 과학 위성. 그러나 1957년 초가 되도록 완성이 안 됐어. 너무 복잡해서.
그때 코롤료프가 미국 정보를 입수했어 — 미국 Vanguard 프로그램이 1957년 말~1958년 초에 첫 위성 발사를 노리고 있다는 거. 코롤료프는 흐루쇼프에게 가서 말했어:
"Object D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매우 단순한 위성 — 그냥 알루미늄 공에 송신기 두 개만 — 이라면 두 달 안에 올릴 수 있습니다. 미국보다 먼저요."
— 세르게이 코롤료프, 1957년 초 (회고록 기록 종합)흐루쇼프는 처음엔 시큰둥했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식이었지. 그러나 코롤료프는 밀어붙였고 — 결국 승인. 두 달 만에 만든 게 PS-1 (Prosteishy Sputnik 1 = 단순한 위성 1호). 알루미늄 합금 공, 안쪽에 무전기, 4개 안테나. 끝.
3개월 후, 1958년 1월 4일에 스푸트니크 1호는 대기권에 재진입해서 불타 없어졌어. 그러나 그 96일 동안 —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을 박아넣었지: "공산주의자들이 우주를 먼저 정복했다."
스푸트니크 발사 두 달 후, 1957년 12월 6일. 케이프 카나베랄. 미국이 Project Vanguard로 첫 위성 발사를 시도했어. 전국 TV 생중계. 자존심 회복이라는 강박 속에서 — 굳이 라이브로 보여줬다.
로켓이 발사대에서 약 1.2m 떠올랐어. 그리고 — 그대로 떨어져서 폭발했다. 위성 자체는 폭발 잔해 속으로 튕겨나갔는데, 거기서도 송신기는 살아서 — 잔해 속에서 "삐, 삐" 신호를 보냈다고. 너무 비참해서 웃겼다는 후문.
해결책은 결국 — EP01에 나온 그 사람. 폰 브라운이었어. 그의 팀이 만든 Jupiter-C 로켓 (V-2의 직계 후손)이 1958년 1월 31일에 Explorer 1을 성공적으로 올렸어. 미국 첫 위성. 전직 SS 장교가 미국의 자존심을 구한 거지.
스푸트니크 1호 성공 후 흐루쇼프는 변했어. 시큰둥했던 그가 — 갑자기 모든 것을 원했다. 그가 코롤료프에게 한 요구:
"한 달 안에 또 하나 올려라. 11월 7일 — 10월 혁명 40주년 기념일에 맞춰서. 이번엔 더 인상적인 걸로."
— 니키타 흐루쇼프, 1957년 10월 (코롤료프에게)코롤료프 팀은 한 달 만에 Sputnik 2를 만들었어. 무게 508kg, 스푸트니크 1보다 6배 무거운. 그리고 안에는 — 모스크바 거리에서 잡혀온 떠돌이 개 한 마리. 이름은 라이카 (Лайка, "짖는 자").
1957년 11월 3일 발사. 라이카는 지구 궤도에 들어간 최초의 생명체가 됐어. 소련은 처음에는 "라이카가 4일간 살아 있었고 안락사됐다"고 발표했어. 그러나 2002년에야 진실이 공개됐다 — 라이카는 발사 5~7시간 만에, 오버히트와 스트레스로 죽었다. 캡슐 단열재가 발사 중 손상됐고 내부 온도가 40°C를 넘어버린 거지.
이건 EP06에서 다시 나오는 패턴이야.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비밀주의 + 시간 압박 = 사고를 숨기는 문화. 이게 결국 1967년 소유즈 1호 코마로프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스푸트니크 충격 후 미국이 한 일은 9개월 사이에 정말 많았어:
스푸트니크 한 발이 — 미국에 NASA를 만들었고, DARPA를 만들었고, STEM 교육 혁명을 만들었어. 1957년의 그 90분이 미국의 향후 70년을 결정했다고 봐도 된다.
다음 편(EP03)에서는 — "Поехали(가자)!" — 1961년 4월 12일, 27살의 농부 아들이 인류 최초로 우주에 간 108분을 다룬다. 코롤료프가 살아 생전 마지막으로 이긴 큰 승리. 그리고 그 한 달 뒤 케네디가 의회에서 한 도박 — "우리는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갈 것이다"의 진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