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기계를 향한 반세기의 꿈. 도쿄의 한 연구실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떻게 캘리포니아의 우승으로 이어졌는가.
테슬라의 옵티머스가 공장 바닥을 걷고, 피규어의 로봇이 BMW 생산 라인에 투입되며, 중국 유니트리의 기계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거의 매주 뉴스를 채우다 보니, 휴머노이드 로봇은 마치 최근 몇 해 사이에 불쑥 등장한 기술처럼 비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닮은 기계를 두 발로 세워 걷게 만들려는 시도의 역사는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의 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긴 계보를 먼저 짚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사실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전기나 컴퓨터보다도 오래된 것이어서, 18세기 유럽의 시계공들은 태엽의 힘만으로 글씨를 쓰고 건반을 두드리는 인형을 만들어 냈고, 자케 드로가 제작한 '글 쓰는 소년'은 깃펜에 잉크를 찍어 한 글자씩 문장을 완성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차를 나르고 활을 쏘던 카라쿠리 인형 또한 같은 욕망의 산물이었는데, 이들에게는 지능이라 부를 만한 것이 전혀 없었고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정교한 기계 장치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인간의 형상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앞에서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정작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바로 '걷기'였습니다. 바퀴로 굴러가는 일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두 다리로 균형을 유지하며 한 발씩 내딛는 일은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과제인데, 사람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쪽 발로 잠시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고 넘어지기 직전의 불안정을 끊임없이 다음 발로 받아내는 동작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익숙해서 의식조차 하지 않는 이 평범한 동작을 기계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인류는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야 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휴머노이드는 1973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가토 이치로 교수의 연구실이 완성한 WABOT-1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람의 키에 가까웠던 이 기계는 두 다리로 걷고 손으로 물건을 쥐었으며 인공 귀와 입을 통해 일본어로 간단한 대화까지 주고받았는데, 한 걸음을 떼는 데 십수 초가 걸렸다는 점을 떠올리면 '걸었다'는 표현이 다소 후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다리와 손, 시각과 청각, 그리고 언어 능력을 하나의 몸체에 통합해 낸 최초의 풀스케일 지능형 인간형 로봇이라는 위치만큼은 분명했습니다.
와세다의 시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서, 1984년에 공개된 WABOT-2는 악보를 읽어 들여 전자오르간을 연주했고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는 동시에 발로는 페달까지 밟았습니다. 기계가 예술을 모방한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대담한 것이었으며, 일본이 이후 수십 년간 휴머노이드 연구의 중심에 서게 되는 흐름의 출발점이 바로 이 무렵 형성되었습니다.
1986년, 혼다는 사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던 연구를 조용히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사람처럼 걷는 로봇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인데, 연구진은 다른 기능에는 일절 욕심을 내지 않고 오직 '걷기'라는 단일한 문제에 집중하여 다리만 갖춘 실험 기체 E0부터 E6에 이르기까지 균형의 물리학을 한 단계씩 풀어 나갔습니다. 그 중심에는 ZMP(영점 모멘트 포인트)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발바닥이 지면을 누르는 힘의 합력이 통과하는 지점을 항상 발이 닿은 영역 안쪽에 두면 로봇이 넘어지지 않는다는 원리로서, 진짜 어려움은 이 조건을 매 순간 실시간으로 계산하면서 수십 개의 관절을 동시에 제어하는 데 있었습니다.
약 10년에 걸친 침묵 끝에 1996년 12월 공개된 P2는, 배터리와 컴퓨터를 등에 모두 짊어진 키 182cm의 기체가 외부 전선 없이 스스로 걷고 계단을 오르며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에도 자세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이는 작은 다리 모형 수준에서 씨름하던 당시 학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습니다. 한 기업이 완성형에 근접한 자립형 이족보행 휴머노이드를 사실상 단독으로 구현해 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었으며, 이듬해에는 이를 한층 다듬은 P3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2000년에 등장한 ASIMO는 그 모든 축적의 결정체였습니다. 키를 130cm 안팎으로 낮춰 사람과 시선을 맞췄고, 부드럽게 방향을 바꾸며 걷는 것은 물론 가볍게 달리기까지 했으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쟁반을 나르고 손을 흔드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수행했습니다. 정형화된 기술 시연의 수준을 넘어 혼다라는 기업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ASIMO는 전 세계의 박람회와 무대를 순회하며 휴머노이드라는 개념을 대중의 인식 속에 처음으로 또렷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다만 ASIMO에게도 본질적인 한계는 존재했습니다. 미리 설정된 환경에서 사전에 설계된 동작을 우아하게 수행하는 데는 탁월했으나 예측하지 못한 거친 현실에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은 약했기 때문인데, 결국 혼다는 2018년에 ASIMO의 독자 개발을 마무리하고 2022년의 마지막 시연을 끝으로 그를 무대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한 시대를 매듭짓는, 비교적 우아한 퇴장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태평양 건너편에서는 전혀 다른 계보가 자라나고 있었으며, 그 출발점은 MIT의 다리 연구실, 이른바 레그 랩(Leg Laboratory)이었습니다. 이곳을 이끈 마크 레이버트는 균형을 정적으로 붙드는 대신 뛰고 튀어 오르는 과정에서 동적으로 잡아내는 접근을 택했고, 1992년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설립해 연구를 학교 밖으로 끌어냈는데, 군과 DARPA의 연구비가 빅도그 같은 사족 로봇을 키워 내는 동안 거기서 축적된 운동 제어 기술이 점차 두 발의 영역으로 옮겨 갔습니다.
이 흐름에 구체적인 방향을 부여한 것은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습니다. 방사선이 가득 찬 건물에 사람을 대신해 진입할 수 있는 로봇이 있었다면 어땠겠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DARPA 재난대응 로봇대회(DRC)가 출범했고,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이 대회의 표준 기체로 Atlas를 제공했습니다. 2013년 공개된 Atlas는 키 약 1.8m의 유압 구동 휴머노이드로서 밸브를 잠그고 문을 열고 잔해를 치우는 재난 현장의 과제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는데, 보기 좋은 무대용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투입되는 일꾼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ASIMO와는 처음부터 그 지향점이 달랐습니다.
한국의 휴머노이드는 한 연구자의 끈질긴 집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그 중심에는 KAIST의 오준호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연구팀은 2000년대 초 KHR 시리즈를 통해 이족보행 기술을 차근차근 축적한 끝에 2004년 한국 최초의 이족보행 휴머노이드인 HUBO를 완성했고, 이듬해에는 미국 핸슨 로보틱스가 제작한 아인슈타인 형상의 얼굴을 결합한 '알버트 휴보'를 선보였는데, 표정을 짓는 머리와 실제로 걷는 몸체가 하나의 기계 안에서 결합된 사례는 당시로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결정적인 분수령은 2015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포모나에서 열린 DARPA 재난대응 로봇대회 결승에서 찾아왔습니다. 차량에서 내려 문을 열고 밸브를 돌리고 벽을 절단하고 계단을 오르는 여덟 가지 과제를 로봇이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이 대회에는 세계 정상급 연구팀이 대거 참가했고 그중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Atlas를 기반으로 한 팀도 여럿이었으나, 최종 우승은 오준호 교수가 이끈 팀 KAIST의 몫이었습니다. DRC-HUBO+가 여덟 과제를 모두 완수하며 가장 빠른 기록으로 정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우승의 의미는 단순한 순위 이상이었는데, 휴머노이드 연구의 본산으로 여겨지던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대학팀이 가장 까다로운 실전 무대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했습니다. 설계의 영민함 또한 인상적이었으니, DRC-HUBO+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는 다리에 장착된 바퀴로 빠르게 이동하고 일어선 자세에서는 두 발로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면서 상황에 따라 보행과 주행을 자유롭게 전환했는데, 이는 로봇이 반드시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는 실용주의적 판단에서 비롯된 설계였습니다.
WABOT에서 ASIMO로, MIT의 레그 랩에서 Atlas로, 그리고 HUBO의 우승으로 이어진 반세기 동안 휴머노이드는 대체로 연구실과 대회장, 그리고 박람회 무대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정교했지만 값이 비쌌고 인상적이었지만 동작이 느렸으며, 무엇보다 스스로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머리'가 빈약했기 때문에, 미리 설계된 동작을 정확히 재현하는 수준이 사실상의 한계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견고한 한계를 무너뜨린 것이 2020년대였으며, 여기에는 두 가지 변화가 절묘하게 맞물렸습니다. 값이 싸면서도 출력이 강한 전기 구동계와 고밀도 배터리가 무겁고 제어가 까다로운 유압 방식을 빠르게 대체해 나갔고, 동시에 인공지능이 비로소 로봇에게 실용적인 수준의 시각과 판단 능력을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테슬라와 피규어, 유니트리를 비롯해 이 시리즈에서 차례로 살펴볼 수많은 이름들이 바로 이 두 흐름 위에서 솟아올랐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공장과 무대에 들어서고 있는 휴머노이드의 현재, 그 거인들의 지형도를 본격적으로 그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