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이 미사일을 주고받은 100여 일 동안 브렌트유는 31% 올랐다. 이번 주 두 나라가 공격 중단을 선언했는데도 시장은 긴장을 풀지 않는다. 이유는 지도 위의 한 지점에 있다. 세계 석유의 20%, LNG의 20%가 지나는 바닷길, 호르무즈.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데이터로 뜯어본다.
지난 주말과 이번 주 초의 시퀀스는 롤러코스터였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헤즈볼라를 공습했고, 곧이어 테헤란·타브리즈·이스파한에서 폭발음이 보고됐다. 월요일(6월 8일) 브렌트유는 3.4% 뛴 배럴당 96.24달러, WTI 는 3.2% 오른 93.41달러로 마감했다. 그리고 하루 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 요청에 이란과 이스라엘이 상호 공격 중단을 발표했다. 유가는 내리지 않았다. 시장은 안도 대신 관망을 택했고, 9일 유가는 오히려 소폭 더 올랐다.
이 충돌은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다.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격화된 이후 100일 넘게 이어져 온 분쟁이다. 그 사이 브렌트유는 분쟁 전야 대비 약 31%, WTI 는 약 37% 올랐다. 같은 주 워싱턴에서는 미 하원이 이란 전쟁 종결을 요구하는 결의를 통과시키며 행정부와 의회의 균열까지 드러났다. 휴전 선언, 의회의 제동, 그러나 풀리지 않는 유가. 이 세 가지가 같은 주에 겹친 이유를 이해하려면, 지도에서 폭 33km 짜리 바닷길 하나를 봐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을 잇는 유일한 바닷길이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이 약 33km, 실제 항로는 양방향 각각 3km 남짓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 운송 초크포인트" 라고 부른다. 숫자를 보면 과장이 아니다.
| 지표 | 규모 | 의미 |
|---|---|---|
| 석유 물동량 (2024 평균) | 2,000만 b/d | 세계 석유 소비의 약 20% |
| 해상 원유 무역 내 비중 | 25%+ | 전 세계 바닷길 원유의 4분의 1 |
| 최대 이용국 — 사우디 | 550만 b/d | 호르무즈 원유 흐름의 38% |
| LNG 물동량 (2025 상반기) | 11.4 Bcf/d | 세계 LNG 무역의 20% 이상 |
| 카타르 LNG 의 호르무즈 의존 | 93% | UAE 는 96% — 사실상 전량 |
| 대체 경로 | 거의 없음 | 우회 파이프라인은 일부만 흡수 |
출처: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국제에너지기구(IEA) 호르무즈 분석. 사우디의 동서 파이프라인과 UAE 푸자이라 라인이 일부 우회 능력을 제공하지만, EIA 는 "해협이 닫히면 석유를 빼낼 대안이 거의 없다"고 명시한다. 위기가 길어지자 EIA 가 지난 5월 초크포인트 전용 데이터셋을 신설했을 정도다.
석유만이 아니다. 한국·일본·중국이 의존하는 카타르 LNG 는 사실상 전량이 이 해협을 지난다. 천연가스는 원유보다 대체 경로가 더 없다. 파이프라인이 없는 해상 LNG 는 배가 못 지나가면 그걸로 끝이다. 호르무즈가 "석유의 해협"으로 불리지만, 전력과 난방의 해협이기도 한 이유다.
세계 GDP 의 흐름을 한 점에 모으면 호르무즈가 된다. 폭 33km, 항로 3km. 세계화가 만든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취약한 설계다. — 초크포인트의 경제학
흥미로운 사실 하나. 호르무즈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완전히 봉쇄된 적이 없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유조선 전쟁" 때도, 2019년 유조선 피격 때도 기름은 계속 흘렀다. 그런데도 유가는 분쟁 100일 만에 30% 넘게 올랐다. 시장이 가격에 반영하는 건 봉쇄라는 사건이 아니라 봉쇄의 확률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가 그 교과서적 사례다. 공격 중단 선언이 나왔는데 유가가 떨어지기는커녕 소폭 올랐다. 이란이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계속 때리면 재개하겠다"는 조건을 달았고, 시장은 그 조건부 휴전의 지속 가능성을 낮게 봤다. 실제로 격화 이후 해협 통과 물동량은 평시보다 제한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보험료가 오르고, 선사들이 우회와 대기를 선택하면서, 물리적 봉쇄 없이도 공급은 이미 빡빡해졌다.
유가의 구성 요소를 갈라 보면 이렇다. 수요와 공급이 만드는 기본 가격 위에, 전쟁이 만드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얹힌다. 분쟁 100일간의 +31% 중 어디까지가 펀더멘털이고 어디부터가 프리미엄인지 정확히 가를 수는 없지만, 휴전 뉴스에도 가격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프리미엄이 아직 두껍게 남아 있다는 신호다.
① 인플레이션과 금리. 유가는 가장 빠른 인플레 전파 경로다. 운송비와 전기료를 타고 몇 달 안에 소비자물가에 닿는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 사이클을 저울질하던 시점에 유가가 90달러대에 고정되면, 인하 시점은 뒤로 밀린다. 6월 초 미국 기술주가 급락했을 때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4.5%대로 뛴 배경에도 에너지발 인플레 우려가 깔려 있었다.
② 해운과 보험. 전쟁 리스크 보험료가 오르면 호르무즈를 지나는 모든 화물의 원가가 오른다. 유조선만이 아니라 컨테이너선도 마찬가지다. 2024년 홍해 사태가 보여줬듯, 초크포인트 하나의 마찰은 글로벌 운임 전체를 흔든다.
③ 증시의 자리바꿈. 분쟁 격화 국면마다 에너지·방산주가 오르고 기술·성장주가 눌리는 로테이션이 반복됐다. 6월 5일 미국 증시 급락(S&P -2.6%, 나스닥 -4.2%)의 직접 원인은 AI 밸류에이션 우려였지만, 채권 금리를 밀어 올린 유가가 그 방아쇠의 한 손가락이었다. 변동성지수(VIX)가 21을 넘어선 것도 같은 주다.
④ 한국 — 이중 노출.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를 지난다. 카타르 LNG 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환율이 겹친다. 달러당 1,550원대의 원화로 90달러대의 원유를 사는 것이라, 원화 기준 도입 단가는 이미 이중으로 부풀어 있다. 무역수지·전기료·물가가 차례로 압력을 받는 구조다.
⑤ AI 시대의 새 회로 — 전력 비용. 이번 사이클에서 처음 등장한 경로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을 먹는 하마이고, 전력의 한계 가격은 많은 나라에서 천연가스가 정한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LNG 가 세계 무역의 20%라는 건, 해협의 긴장이 곧 AI 추론 비용의 변수가 됐다는 뜻이다. 반도체를 팔아 호황을 누리는 한국엔 동전의 양면 같은 이야기다.
호르무즈에서 1만 km 떨어진 서울의 주유소 가격표, 도쿄의 전기요금 고지서, 실리콘밸리의 데이터센터 전력 계약서. 폭 33km 바닷길의 긴장은 그 모든 숫자에 분산 청구된다. 이번 주의 휴전 선언이 지켜진다면 리스크 프리미엄은 서서히 빠질 것이다. 깨진다면, 시장은 이미 본 영화의 다음 장면을 더 빠르게 가격에 넣을 것이다.
확실한 건 하나다. 세계 경제는 지난 100일 동안 자신이 얼마나 좁은 길 위에 서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에너지 다변화, 비축유, 대체 항로, 그리고 원자력·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같은 단어들이 다시 정책의 앞줄로 나온 이유다. 좁은 길의 지정학은 끝나지 않았고, 그 청구서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